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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모감정코칭] 내 안에 잠든 관찰자를 깨워라
등록일 2014-10-28 조회수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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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감정코칭] 김인영의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살림살이
 
 
“내 안에 잠든 관찰자를 깨워라”
 
 
김인영 (포사람 연구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 가끔씩 내 자신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 조용히 되짚어 보고 위로받고 싶을 때 읊조려보게 되는 시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공’ 이라는 주제가 우리의 삶을 이끄는 모티브였다면, 요즘은 자신을 알고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다른 사람의 이목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행복’이 화두가 된 시대라고 합니다. 이것을 좀 더 확장시켜 이야기해보자면, 나에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삶이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이고, 그렇게 긍정적이고 충분한 경험을 가진 내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수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비로소 행복이라는 삶이 만들어져 간다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속적인 성공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신에게 진실해지고 싶은 마음, 개인의 가치와 신념에 따라 살고 싶은 소망에 더 큰 자극과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 스스로, 그리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서 우리의 삶이 만들어져 간다면 참으로 이상적이겠지만, 문제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라는 존재의 패러다임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어렵게 만드는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이 아닌 것에서 자기를 찾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닌 것이 나다’라는 어떤 외부의 스토리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행복과 만족감을 내 안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는 것입니다. 남의 기대대로 남의 계획에 맞춰 살다보니 나에겐 어떠한 보람도 만족도 없게 되고, 나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그러다 보면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비난과 못마땅함이 생겨나고 결국은 타인에 대한 원망과 비판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내 안에 잠든 ‘내면의 관찰자’를 깨우는 것입니다. 내면의 관찰자는 자신의 경험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심오한 능력이며 다른 말로 awareness라고도 하는 것인데, 아무런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우리의 내면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식하게 만들어 줍니다. 잠자는 내면의 의식을 깨워서 과거에 처리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남아 있는 감정의 경험들을 처리하게 되면 내가 변하게 되고, 내가 변하면 남이 변해 보이는 겁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스스로와 내면의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해 느낀 것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경험에 대한 기대나 실망 등 끊임없이 분석하고 평가하고 느끼는 작업을 마음과 머릿속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는 말에 따라 느낌이나 감정, 사고가 달라지고, 신념도 달라지고, 결국은 행동까지 달라지게 됩니다. 내면의 관찰자는 이런 내 마음과 머릿속 무의식의 필터와 관점을 바꾸게 해줌으로써 내 삶을 스스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지게 합니다. 그렇게 평정심을 갖게 되고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면의 관찰자가 활성화 되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의식 중에 우리 안에 남아있는 중요한 감정을 처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보통 내가 아닌 것에 동일시 되게 만드는 감정들은 분노로, 슬픔의 상처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 분노나 슬픔의 애도작업을 해보면 좋습니다. 우리들 중 부모님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중에 나에게 더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한 분을 선택합니다. 살아오면서 그분과 연관되어 힘들었던 상처들을 충분히 느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도 나처럼 자신이 처했던 상황과 형편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최선을 다했을 거야’ 라고 인정하고 용서하며 떠나보내는 일종의 애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 후 전화를 겁니다. 직접 목소리를 듣고 ‘어머니(혹은, 아버지) 사랑합니다. 나를 태어나게 해주시고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이야기를 하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혹시 생존해 계시지 않아 어렵다면 편지를 써도 무방합니다. 이 작업을 하면 정말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내 안 깊은 곳에서 나도 모르게 용서와 회한의 눈물이 흐르고, 가슴 속에 뭔지 모르게 막혀있던 부분이 시원하게 뚫리는 거 같은 느낌이 들고, 부모님과 타인에 대한 긍휼한 마음과 사랑이 일어나며, 나 자신이 그만큼 성숙해진 느낌이 드니 말입니다.
 
그리고 내면의 관찰자는 무엇인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순간이 왔을 때 감정이나 사고가 명확해 질 때까지 기다려 최적의 타이밍을 찾도록 도와줍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나 상황에 이끌려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까?’하는 내가 아닌 것에서 벗어나 ‘내가 가진 자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나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진정한 의도나 무한한 가능성(자원)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존재를 표현해야 합니다. 이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있다면 3가지 정도 찾아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나 스스로를 어떻게 소극적으로 만들었는가? 소극적으로 만든 결과 나는 어떤 피해와 유익을 얻었는가? 소극적인 것을 중단하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내면의 관찰자가 하는 대답을 작은 수첩이나 메모지에 기록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고가 명료해지고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내면의 소리를 보다 명확하게 듣게 되고 균형 있게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내면의 관찰자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기대’ 대신에 ‘기여’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기대는 은연중에 본전을 생각나게 해서 내가 원하는 만큼 되돌아오지 않았을 때 실망과 원망을 하게 만듭니다. 반면 기여는 상대의 반응을 요구하지 않고 나의 것으로 남에게 이바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과 행동이 훨씬 자유로워집니다. 즉, 기대함으로 남을 탓하고 교정하려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기여의 마인드로 ‘나나 잘하자’라는 여유로움을 만든다면, 내 존재감이나 자유의지로 상대를 배려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내면의 관찰자를 깨워 의식화 시키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이 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균형 잡힌 양쪽 날개를 가진 새가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것처럼 나 자신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도 인정하고 수용하며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도록, 나를 존중하는 동시에 외부나 다른 사람도 존중하는 균형 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렇게 상호간 균형 잡힌 상태에서만이 비로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미 있는 손짓을 할 수 있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그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존재, 나 자신을 나답게 완성해 나가는 존재, 그래서 서로에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쓰기를 마치는 가운데, ‘엘렌 바스 Ellen Bass’가 했던 말이 떠올라 전해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한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애벌레는 나비가, 상처받은 인간은 온전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 출처 : 사단법인 포사람(fors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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